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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괴롭힘을 넘어 법적 분쟁까지…오피스 빌런 퇴치 골몰하는 세계 성희롱, 괴롭힘 유행병처럼 확산
국제노동기구(ILO)는 2019년 6월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의 제거에 관한 협약’을 채택했다. 그만큼 국적과 문화를 막론하고 문제 사원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기구(Workplace Bullying Institute)는 지난해 미국 직장인 7300만 명이 직장 내 괴롭힘(workplace bullying)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설립자인 게리 나미에(Gary Namie) 사회심리학 박사는 “직장 내 괴롭힘이 미국 일터에서 유행병처럼 확산돼 있다”고 말했다.
 
‘오피스 빌런’ 등장에 난처한 기업들
오피스 빌런은 회사 사무실 ‘오피스(office)’와 ‘악당(villain)’의 합성어로, 회사 내에서 피해를 주는 직원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하버드 비즈니스리뷰(HBR)에서는 이들을 ‘Toxic employees(폭탄 같은 직원)’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최근 오피스 빌런은 동료 직원에 불쾌함을 주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단순한 사내 해프닝을 넘 밖에서 법적 문제를 일으키거나 인사 운영에 부담을 주기도 한다. 상습적인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 동료에 대한 근거없는 문제 제기, 무차별 고소나 신고, 업무 성과 채가기 등 양태도 다양하다. 
기업의 가장 큰 고민은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이다. 오피스 빌런은 어디서, 언제, 어떻게 나타날 지 모르고 방식이나 지위도 다양하다. 기업이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서 균형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어렵다. 2019년 생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 부당함을 참지 않는 요즘 직원들의 성향도 고려 요소다. 제약회사 등 영업이 주력인 기업은 직원 관리에 골머리를 앓는다. 저연차 직원도 거래처에 갑질을 하고 부정한 대가를 받는 등 ‘대형 사고’를 치는 사례가 많다. 한 자문사 파트너는 일은 챙기지 않으면서 점심 저녁마다 일에 치이는 후배들을 불러 모아 빈축을 사는데 ‘스스로 빌런임을 모른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로 지적받는다.

한 금융투자사 임원은 직원의 투자건을 훼방 놓다가 ‘사고나면 책임지라’는 다짐을 받고 투자 승인했다. 좋은 성과가 나자 대표실을 찾아가 ‘내가 투자를 결정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성(性)문제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뚜렷한 문제들은 진상을 밝히고 징계를 하면 되지만 과장 신고나 허위 등 ‘없는 문제’를 일으키는 직원들이 기업의 새로운 골칫거리다. 최근에는 고위임원을 협박하는 직원의 사례도 많아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수행비서나 운전기사 등이 언제 악의적인 녹취록을 흘릴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하는 임원들이 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초기 정보 확보가 중요하다.
오피스 빌런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파이 커지며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적당히 처리’할 수 없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오피스 빌런을 그대로 두면 회사 역량이 낭비됨은 물론 외부 평판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소비재 기업일 경우 이미지에 타격이 커 불매운동으로 번지기도 한다. 가뜩이나 기업의 실적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선 문제 직원에 나가는 비용도 아깝다. 기업이 문제 직원을 ‘해고해서 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국내 노동법상 근로자를 쉽게 해고할 수 없을 뿐더러, 해고만이 답도 아니다. 극단적인 강경책은 역효과를 낸다. 위임계약으로 언제든 해임이 가능한 빌런 임원이 오히려 쉬운 면이 있다. 최근엔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회사가 입길에 오르는 경우도 많아졌다. 법적 위험을 줄이고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외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노동 시장도 미국을 따라갈 것으로 본다. 미국에선 권리를 찾기 위한 직원들이 회사를 고소하는 경우가 많고, 회사는 중요한 인사 사안을 외부에 맡겨 처리하기도 한다.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해결하기 어려울수록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제 3자’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피스 빌런은 사랑 못 받고 자란 사람들… 활개치지 못하게 막아야
직장인 A씨는 ‘자신보다 어린 여성이 상사’라는 사실에 불만을 품고 회사에서 공공연하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 어린 남성 직원에게도 수치스러운 욕설을 했으며 회식 자리에서 만취에 목을 조르고 때렸다. 직장인 B씨는 평소 의견 대립이 잦던 팀장이 자신을 괴롭혔다고 주장했다. 회의에서 “근거를 이야기하라”며 모욕감을 줬다는 것이다. B씨는 1개월 안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유급 병가를 냈다. 회사는 조사 후 괴롭힘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B씨는 병가 연장과 팀장 교체를 요구했다. 오피스 빌런은 회사 운영에 부담을 주고 생산성을 저하시킨다. 전문가들은 “오피스 빌런은 타인의 고통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며 “회사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법적으로 적극 대처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는 “오피스 빌런은 히틀러나 마찬가지”라며 “성장 과정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타인과 정서적 유대감을 맺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오피스 빌런은 싫어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모습에 직성이 풀리고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 교수는 “오피스 빌런은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에서 대범하게 행동할 때가 있어 (얼핏) 리더십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로 결과가 좋다면 방법이 나빠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조직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분위기를 조성해서 오피스 빌런이 활개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진심으로 헛소리를 하는 오피스 빌런도 있다”며 “선거에서 진실이 아니라 (거짓이라도) 진심으로 말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회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어 “임원들이 보기에 오피스 빌런은 진심이 있는 충신처럼 느껴져서 좋아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고를 칠 때까지 회사에서 파악할 수 없어 문제”라고 했다. 김 교수는 “오피스 빌런은 자신의 이득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반대로 남을 배려하는 착한 사람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무실에서 같은 잘못을 해도 착한 사람을 처벌하고 공격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수록 오피스 빌런이 의기양양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착한 사람 편에 서야 한다”고 했다.
 
직장인 79.5% “회사에 빌런 있어, ‘갑질·막말형’이 최악”… ‘친절왕형’ 호감
인크루트가 사내 오피스 빌런 관련 경험을 들어보기 위해 직장인 81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오피스 빌런이 주변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10명 중 8명(79.5%) 정도는 있다고 답했다. 오피스 빌런으로 지목된 당사자는 본인이 지목된 것을 알고 있을 지에 대해선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것 같다(7.1%) △대체로 아는 눈치다(18.9%) △대체로 모르고 있는 것 같다(46.8%)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27.2%)는 답변이 나왔다. 오피스 빌런과 함께 잘 지내는 방법에 대해 과반(55.3%)은 ‘티 안 내고 무시하는 방법’을 꼽았다. △ ‘적당히 선을 유지하고 자극시킬 말과 행동은 일절 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33.1% △‘그의 말 또는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그 부분을 명확하게 이야기한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10.0%였다.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가장 최악의 오피스 빌런은 △부적절한 언행이나 갑질로 직원들을 괴롭히는 동료인 ‘갑질·막말형(21.1%)’이 꼽혔다.

이어 △프로젝트나 성과가 좋으면 내 탓, 안 좋으면 남 탓하는 동료인 ‘내로남불형(13.5%)’ △맡은 직무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월급만 찾는 동료를 뜻하는 ‘월급루팡형(13.4%)’이 뒤를 이었다. 이 밖에 △손톱을 깎거나 양말 벗고 근무 등 사무실을 집처럼 여기는 동료인 ‘사무실을 안방처럼형(7.9%)’ △자신이 검색해보면 되는 내용을 남에게 물어보는 등 동료의 의존도가 강한 동료인 ‘핑거 프린스·프린세스형(7.4%)’도 있었다. 응답자에게 본인은 회사 동료에게 부적절한 언행이나 갑질을 한 적이 없는지, 오피스 빌런에 해당되는 부분은 없는지 묻자 △매우 해당된다(2.2%) △약간 해당된다(15.0%) 등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은 17.2%에 그쳤다. 반면 △대체로 해당 안 된다(50.7%) △전혀 해당 안 된다(32.1%) 등 인정하지 않는 응답이 훨씬 더 많았다. 오피스 빌런이 아닌 회사에서 인기 많고 동료에게 호감을 사는 유형은 △잦은 업무 요청과 질문에도 친절히 알려주는 동료인 ‘친절왕형(28.9%)’이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성실하고 일처리가 깔끔한 동료인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의 줄임말)형’이 23.2%로 그 다음이었다.
 
“조직이 피해자 편에서 강력 대처한다는 것 보여줘야”
법무법인 율촌의 조상욱 변호사는 “(직장 괴롭힘 등이 발생했을 때) 회사가 피해자 편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강력하게 대처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가해자는 본인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반성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조직에서 초기 대응을 잘 하고 피해자가 외롭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다. 직장 괴롭힘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회사는 자체 조사를 시작한다. 자체 조사는 신속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 외부 전문기관에 조사를 맡기면 신뢰도를 높일 수 있지만 조직 문화, 직원 간 관계를 모르기 때문에 시행 착오가 발생할 수 있다.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의 경우 특별 조사 위원회를 꾸리기도 한다. 
조 변호사는 회사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피해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피해자가 고통이 극심하다보니 노동위원회 같은 곳에 출석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직접 가서 증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피해자의 출석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사도 고도의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조 변호사는 “근거 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고소·고발을 일삼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정보를 수집하고 차근차근 대응해야 한다”며 “초기 대응에서 회사의 의도를 관철하는 것이 부작용 확대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유인경 기자  yinkyung@sisanews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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