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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경영철학의 아디다스 CEO친환경의 첨단 소재로 승부수 기업구조 개선과 생산성 강화
아디다스는 아돌프 다슬러(Adolf Dassler)가 1924년 독일 바이에른 주에 설립한 독일의 스포츠 용품 브랜드이다. 1924년 설립 당시에는 형인 루돌프 다슬러(Rudolf Dassler)와 함께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Gebruder Dassler Schuhfabrik)'으로 시작하여 가내 수공업으로 내구성이 강한 축구화를 만들며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축구화 생산 주문을 받으며 세계 스포츠 기업이 된 아디다스의 최고 경영자인 카스퍼 로스테드(Kasper Rorsted)의 경영 철학을 알아본다.
 
독일 스포츠 용품 제조업체 아디다스의 최고 경영자(CEO)인 카스퍼 로스테드(Kasper Rorsted)가 계약이 만료되기 전인 내년에 그의 자리를 떠날 것이며 후임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토마스 라베(Thomas Rabe) 감독이사회 의장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지정학적 긴장의 경제적 결과로 특징지어졌던 3년 간의 도전적인 시간이 지나고 이제 CEO 교체를 시작하고 재가동을 위한 길을 닦을 적기”라고 말했다. 토마스 라베(Thomas Rabe) 감독이사회 의장은 로스테드가 2023년 동안 자신의 직위를 넘겨줄 것이라는 데 상호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그 자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6년부터 아디다스를 이끌고 있는 로스테드(Rorsted)는 지난 몇 년 동안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2023년에 재가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회사와 개인적으로 모두 옳은 일인 이유”라고 말했지만 그가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아디다스는 최근 중국의 팬데믹 제한에서 예상보다 느린 회복을 이유로 2022년 수익 목표를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스포츠 스타 마케팅의 시초 기업
3선 트레이드 마크로 유명한 아디다스는 나이키와 함께 누구나 알고 있는 세계적인 스포츠 용품 브랜드로 손꼽힌다. 아디다스는 최초로 스포츠 스타 마케팅을 시도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아디다스는 아돌프 다슬러(Adolf Dassler)가 1924년 독일 바이에른 주에 설립한 독일의 스포츠 용품 브랜드이다. 
1924년 설립 당시에는 형인 루돌프 다슬러(Rudolf Dassler)와 함께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Gebruder Dassler Schuhfabrik)’으로 시작하여 가내 수공업으로 내구성이 강한 축구화를 만들며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축구화 생산 주문을 받았다. 1936년 미국의 제시 오언스(Jesse Owens)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이들이 만든 신발을 신으며 베를린 올림픽의 최고의 스타가 되면서 대중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얻었고 다슬러 형제의 사업은 승승장구하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형제는 갈등을 겪으며 1947년 각자의 길로 갈라섰고, 1948년 형인 루돌프 다슬러는 오늘날의 ‘푸마(Puma)’를 설립하고, 아돌프 다슬러는 1949년 자신의 애칭인 아디(Adi)와 성 다슬러(Dassler)의 앞 글자들을 결합하여 아디다스(adidas)로 회사명을 바꾸며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아디다스 브랜드가 시작됐다.
 
아디다스는 스포츠 스타 마케팅을 최초로 시도한 브랜드이다. 앞서 언급했던 제시 오언스의 사례가 전 세계 스포츠 마케팅의 시초였다. 아돌프 다슬러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스파이크 러닝화를 제시 오언스에게 신기고자 직접 베를린까지 운전하여 찾아가 간곡히 부탁한 일화로 유명하다. 제시 오언스는 이 러닝화를 신고 올림픽에 출전하여 100m, 200m, 400m 계주와 멀리뛰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아디다스는 올림픽의 역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신발을 선수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었고,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는 75%의 선수들이 아디다스의 신발을 신었으며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아디다스 신발은 모든 심판진들과 대부분의 선수들이 신으며 올림픽을 통해 지속적인 스포츠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바 있다. 
올림픽 외에도 실력 있는 국가와 팀 그리고 선수들과 파트너십을 맺기도 하고 월드컵 및 올림픽 등 국제 대회의 공식 파트너로 활동하고 세계적인 선수들도 후원하였다. ‘아디다스 축구화를 신지 않으면 일류 선수가 아니다’라는 말이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선수들 사이에 나오기도 하며 스포츠 용품 분야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또한 월드컵 점령전을 펼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은 독일과 아르헨티나가 우승국과 준우승국이 되면서 2조 6000억 가까이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베컴 축구화’로 불리는 ‘프레데터’라인은 아디다스의 적극적인 스포츠 스타 마케팅 전략의 결과물이다. 아디다스와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이 1890억 원의 종신 계약의 체결을 맺은 것이다. 이 계약을 통해 아디다스 제품을 데이비드 베컴뿐만 아니라 아내인 빅토리아 베컴의 일상생활 속에 노출시키며 옷을 잘 입는 스포츠 스타로 여겨지는 베컴 부부를 활용하여 매출을 끌어올리며 수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도 했다.
 
캠페인을 통한 브랜드 영향력
나이키의 슬로건처럼 아디다스도 여러 캠페인을 펼치며 아디다스만의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아디다스는 나이키보다 먼저 ‘FOREVER SPORT’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대중들의 큰 반응을 얻지 못하며 그럴듯한 성과가 없었다. 아디다스의 주 캠페인으로 진행되고 있는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Impossible is Nothing)’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2004년이다. 바로 유로2004에서 그리스의 예상 밖의 우승을 축하하며 전설적인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가 했던 말인 이 문구와 함께 전면광고를 진행한 것인데,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후 아디다스는 대중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이 말의 주인공인 무하마드 알리의 영상으로 광고를 제작하고, 리오넬 메시(Lionel Messi)와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 등과 같은 어려웠던 과거를 극복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스포츠 스타들의 이야기를 이용한 시리즈 광고를 내보내며 불가능에 도전하는 자들의 첫걸음을 응원하는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이 캠페인을 통해 아디다스는 시장 점유율과 판매율이 모두 20% 이상 상승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2011년 ‘아디다스, 열정으로 하나 되다(adidas Is All In)’를, 2014년 브라질 올림픽에서 ‘전력을 다하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All In Or Nothing)’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캠페인들도 아디다스의 영향력을 보여주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덴마크 출신 젊은 CEO 카스퍼 로스테드
1955년 덴마크 오르후스에서 태어난 로스테드는 코펜하겐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오라클, 컴팩, 휴렛팩커드 등 글로벌 기업에서 경험을 쌓았다. 2008년에는 글로벌 소비재 기업 헨켈 CEO 자리에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친 무렵 그는 1000개에 달하던 그룹 브랜드 중 100개를 없애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세제, 살충제, 접착제 등 경기에 민감한 브랜드를 취급하고 있어 기업은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1억5000만유로(약 1990억원)의 비용을 절감한 그는 회사가 강점을 지닌 분야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로스테드 CEO가 헨켈을 이끈 8년 동안 회사 주가는 27유로에서 100유로까지 뛰었다. 긴 시간 헌신하며 기업의 체질을 바꾼 점이 아디다스 CEO로 발탁된 배경이었다. 이고르 란다우 아디다스 감사위원장은 “로스테드 CEO는 유명 회사에서의 국제 경영 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헨켈을 매우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며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초고속 생산으로 소비자 욕구 대응
아디다스는 스포츠용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로봇 생산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독일 안스바흐와 미국 애틀랜타 공장에 설치한 ‘스피드 팩토리’에선 1년에 운동화 100만 켤레를 생산할 수 있다. 신발 하나를 제조하는 데 5시간이면 충분하다. 호평받는 모델을 내놓고서도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없기 때문에 아디다스의 도전은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3억 켤레에 달하는 아디다스의 연간 생산 능력을 감안하면 비중이 높다고 할 수 없지만 스피드 팩토리는 제조 장소와 방법, 제작 시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평가받는다. 아디다스는 이 제조 시스템이 정착되면 회사 재고 관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생산성이 높아지고 비용을 줄이면 회사의 자원을 연구개발(R&D)과 마케팅에 투자할 여력이 생긴다는 것도 장점이다. 
로스테드 CEO는 아디다스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자라, SPAO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 같은 신속한 생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로스테드 CEO는 아디다스가 보유하고 있는 스포츠 브랜드 리복의 기업구조 개선 작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2006년 리복을 인수한 아디다스는 리복을 매각하라는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그러나 그는 매각 대신 구조조정을 택했다. 
 
스포츠 브랜드 넘어 친환경 기업 변모 주도, 모든 제품 90% 지속가능한 소재 사용
카스퍼 로스테드 CEO가 이끄는 아디다스는 스포츠 브랜드를 넘어 친환경 기업으로 변모했다. 지속가능한 소재를 자사 제품에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등 전 세계적 화두인 환경 문제 해결에 보폭을 넓혔다. 3선 트레이드 마크로 유명한 아디다스는 나이키와 함께 세계 양대 스포츠 브랜드로 꼽힌다. 최근에는 전 세계의 이목을 끄는 부분이 하나 더 있는데, 아디다스가 꾸준히 핵심 경쟁력이자 최우선 과제로 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아디다스의 지속가능경영 전략 중심에 친환경 제품이 있다. 아디다스는 제품 생산에 사용하는 플라스틱 중 재활용 폴리에스테르 비중을 50% 이상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자원순환을 통해 회사가 추구하는 지속가능경영을 강화하겠다는 복안이다. 한발 더 나아가 2024년부터는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모든 제품에 재활용 폴레이스테를 활용하겠다는 목표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아디다스의 경영 전략은 실제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디다스의 지속가능경영 중 빼놓을 수 없는 활동은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를 활용한 신발 제작이다. 2015년부터 해양환경단체 ‘팔리 포 더 오션(Parley for the Oceans)’과 협업해 매년 수거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신발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2020년에만 7000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거해 신발 1500만 켤레를 만들었다. 플라스틱병으로 따지면 3억5000만개에 달하는 양이다. 지속가능성 제품 확대를 위한 투자와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해 핀란드 기업 스피노바(Spinnova)에 365만 달러를 투자한 게 대표적이다. 스피노바는 목재 또는 농업 폐기물에서 섬유를 생산하는 스타트업으로 이 회사의 섬유는 100% 재활용할 수 있다. 또 미세플라스틱이 없고 생분해되는 특징이 있다. 앞서 핀란드 스타트업인 인피니트 파이버(Infinite Fiber)와 연구 협력을 통해 헌 옷을 면과 같은 소재로 바꾸는 프로세스도 개발 진행하였다. 카스퍼 로스테드 CEO가 사령탑을 맡은 뒤 아디다스의 지속가능경영은 본격화 됐다. 2020년 전 제품의 60%를 지속가능한 소재로 사용한다는 목표를 달성한 후 보다 공격적인 전략을 내세웠으며 향후 모든 제품의 90%를 지속가능한 소재로 사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2025년까지 재활용 루프(재활용 소재로 제작), 순환 루프(재제작), 재생 루프(자연·재생 재료로 제작) 등 3루프 시스템을 확대해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울러 지속가능한 소재로 만든 제품에 대한 소통과 마케팅을 강화하고 제품 회수 프로그램을 대규모로 실시해 아디다스의 지속가능경영을 한층 강화하였다. 로스테드 CEO의 임기는 지난 2020년, 오는 2026년 7월 30일까지로 연장됐었다. 하지만 3년 앞당겨 퇴진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아디다스로서는 그만큼 새로운 모멘텀 마련이 절실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철영 대기자  lcyfe@sisanew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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