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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시계산업의 대부 스와치그룹 닉 하이에크 CEO막강 기술력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자체 생산… 애플 등 ‘러브콜’
스위스는 16세기부터 지금까지 약 400년 동안 전 세계 시계 산업을 이끌고 있는 국가다. 2017년 기준 시계 시장에서 롤렉스, 오메가, 티쏘, 라도 등 스위스 기반의 시계 브랜드 시장점유율은 50%를 상회할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잘 나가는 스위스 시계도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1969년 세이코가 쿼츠 시계를 제작한 것. ‘스와치(Swatch)’의 등장으로 약 10년 만에 다시 정상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장인 정신’만 고집하다 밀려난 스위스 시계
16세기 귀금속 착용이 금지되면서 시계 산업에 뛰어든 스위스는 1800년대 전 세계 시계 시장의 3분의 1을 잠식하면서 세계 최대 시계 산업국으로 부상했다. 공공재 개념이었던 시계가 개인 주머니에 들어갈 때도, 주머니에서 다시 손목으로 옮겨갈 때도 스위스는 늘 시계 산업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1900년대 초 스위스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롤렉스와 오메가, 론진 등의 등장은 스위스 시계 산업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1969년, 쿼츠의 등장으로 전 세계 시계 산업의 판도가 바뀌었다. 당시 일본 시계 브랜드 세이코가 기계식보다 300배 정확하고 가격은 저렴한 쿼츠 시계를 내놓으면서 스위스의 시계 산업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시계들은 낮은 임금과 마진을 무기로 손목시계 시장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귀족들과 부자들만 지닐 수 있었던 시계가 처음으로 대중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위스는 ‘장인 정신’만을 고집하며 여전히 태엽을 감아 사용하는 고가의 시계만을 생산했고, 1980년대에는 전 세계 시계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손목시장에서 10%대만 점유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았다. 명품 시계들은 여전히 스위스산이 인기를 끌긴 했지만, 롤렉스를 제외하면 모두 파산 직전이었다. 특히 100년 전통의 오메가와 티쏘를 보유한 SSIH(시계산업스위스협회)와 미도, 론진을 보유한 ASUAG(시계산업스위스협회)는 순식간에 몰락했다. 이때 사업가였던 니콜라스 하이에크(Nicolas Hayek)가 등장했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스위스로 이주한 니컬러스는 1980년대 유명 경영컨설팅회사(하이에크 엔지니어링)를 운영하고 있었다. 1980년대 초 스위스 금융계로부터 스위스 시계산업에 대한 컨설팅을 의뢰받았던 그는 면밀한 분석 후에 스위스 시계산업의 자생 가능성을 확인했고, 아예 시계산업에 직접 뛰어들었다.
그의 전략은 오메가와 티쏘 등을 보유한 SSIH(시계산업스위스협회)와 론진과 라도 등을 거느린 ASUAG(스위스시계산업연합)를 합병해, 일본 쿼츠시계에 맞설 수 있는 중저가 시계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SSIH와 ASUAG의 주 채권단인 스위스 은행이 니콜라스 하이에크가 설립한 컨설팅 기업 하이에크 엔지니어링에 컨설팅을 의뢰했고 하이에크는 스위스 시계 산업 전반을 진단하고 시계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저가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에는 스위스 시계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훼손한다며 반대했으나 하이에크는 채권단을 설득했다. 하이에크는 시계를 다른 시각으로 접근했다. 
스위스가 1800년대 시계의 왕국이었던 영국을 밀어낸 이유도, 스위스가 세이코 쿼츠시계에 밀려난 이유도 모두 시계의 ‘정확도’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이에크는 시계 제작 기술이 평준화되면서 정확도는 더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 디자인적 요소를 넣는 역발상을 한 것이다. 처음에는 ASUAG의 자회사인 에타(ETA)에서 1.98mm의 초박형 시계를 개발해 냈다. 처음에는 판매망을 가진 기존의 브랜드에서 출시하려 했으나 고급화 이미지에 흠집이 날 수 있다는 채권단들의 의견에 따라 ‘스와치’라는 독립적인 브랜드로 출시했다. 현대적인 디자인에 기존 브랜드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색상의 시계를 내놨고, 출시 1년 만에 100만 개가 팔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에도 6주에 한 가지 이상의 새로운 디자인을 가진 시계를 출시해 ‘시계 = 패션 소품’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심었다. 다만 스와치의 성공에도 채권단은 스와치의 시계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 일본 회사에 매각하려 했다. 
 
첨단기술과 아날로그 시계의 만남
지금까지도 스와치는 전 세계 1위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다. 까르띠에, IWC, 피아제 등을 거느린 리치몬트(Richemont) 그룹이나 불가리, 태그호이어 등을 보유한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 그룹도 시장점유율로는 스와치 그룹에 상대가 안 될 정도다.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디자인으로 무장한 스와치는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1998년에는 아예 회사 이름을 스와치그룹으로 변경했다. 현재 스와치그룹은 세계 최대 시계제조사 그룹으로 성장했다. 1992년 블랑팡, 1999년 브레게, 2000년 글라슈테 오리지널, 2013년 다이아몬드 브랜드인 해리윈스턴 등을 사들이며 보유 브랜드를 19개까지 늘렸다. 
스와치의 시계 혁신은 1위 자리를 탈환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1995년에는 시계 내부에 메모리칩을 삽입해 인터랙티브한 기능을 내세운 ‘스와치 액세스’를 선보였다. 처음에는 스키장에서 시계로 스키 패스 기능을 하는 용으로 만들어졌는데, 2003년에는 한 단계 발전해 교통카드 기능을 탑재한 시계를 내놨다. 최근에는 체크카드와 신용카드 모두를 대체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의 결제시스템 ‘스와치페이’ 기능을 넣은 스와치 액세스를 출시하기도 했다. 
 
닉 하이에크는 누구
스위스 시계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운 니컬러스는 2010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이후 첫째 딸인 나일라 헤이엑(Nayla Hayekㆍ66)이 그룹 회장을 이어받았다. 나일라 회장과 함께 현재 실질적으로 스와치그룹을 경영하는 인물은 니컬러스의 장남 닉 헤이엑(Nick Hayekㆍ63)이다. 그는 2003년부터 스와치그룹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닉 하이에크 스와치그룹 CEO는 전 세계 시계 산업의 거물로 통한다. 스와치가 19개 브랜드를 거느린 거대 그룹인데다,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직접 생산하면서 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계는 단순히 부품만 조합해 이뤄진 게 아니라, 가치를 담은 물건이다.” 하이에크 CEO는 시계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있다. 시계의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자체 생산한다는 스와치 그룹의 경영 방식이 그것이다. 생산에 들어가는 공정이 따로 떨어져 있으면 의사소통이나 자원 활용에 비효율이 생긴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죽 시계줄 정도를 제외하고 시계에 들어가는 부품은 거의 다 만든다”며 “‘100% 메이드 인 스위스’라는 자부심에 걸맞게 품질 관리도 철저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완벽한 수직계열화는 ‘기술력’이라는 스와치그룹의 또 다른 강점을 은연 중에 드러낸다. 스와치그룹은 ‘시계의 심장’이라 불리는 핵심부품인 무브먼트(동력장치)를 비롯해 케이스, 배터리, 크라운(용두), 핸즈(시곗바늘), 이스케이프먼트(탈진기) 등을 제조하는 계열사를 함께 거느리고 있다. 또 시계 하나를 만들려면 마이크로칩, 마이크로컨트롤러, 배터리 등 여러 정밀부품이 필요한데 이런 부품을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기술력이 우수하다는 뜻이다. 스와치그룹에서 만든 쿼츠(석영)는 삼성전자 휴대폰의 부품으로도 사용된다. 하이에크는 기술력이라는 강점에 힘입은 사업 다각화 전략도 꾀하고 있다. 그는 “우리 회사는 마이크로공학에 있어서도 정상급”이라며 “시계 제조로 축적한 전력효율 노하우를 활용해서 전기차 배터리도 만들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했다.
스와치그룹은 현재 닉 CEO를 중심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상황이다. 일본산 쿼츠 시계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던 때처럼 애플의 2015년 애플워치 출시로 기존 시계 산업이 위축하자, 글로벌 정보기술(IT) 공룡에 맞서 자체 독자 스마트워치 운영체제(OS) 개발 카드를 꺼내들었다. 닉은 시계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자체 생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생산에 들어가는 공정이 따로 떨어져 있으면 의사소통이나 자원 활용에 비효율이 생긴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들의 러브콜
스와치그룹은 삼성전자와 애플, 구글 등 글로벌 IT 업체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들 IT 기업들이 스마트워치 출시를 앞두고 스와치그룹 출신의 인재를 영입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계 제조 경험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보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애플은 올해 안에 ‘아이워치’를 출시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삼성전자도 스마트워치 갤럭시 기어의 후속 제품인 ‘삼성 기어2’를 출시할 예정이다. 구글은 자사 웨어러블 스마트 기기에 전용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 웨어’를 공개했다. 다만 하이에크 CEO는 “이들 업체와 협력을 해야 할 뚜렷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며 스마트워치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스와치家 3대째 혁신 중으로 닉 CEO가 자체 OS를 통해 차별화한 스마트워치 개발에 집중하는 사이, 스와치의 초고가 브랜드 경영은 니컬러스의 손자이자 나일라 회장의 아들인 마크 헤이엑(Marc Hayekㆍ46)이 담당하고 있다. 1992년 스와치그룹에 입사한 마크는 현재 수천만원대의 시계 브랜드인 블랑팡, 자케드로, 브레게의 CEO를 맡아, 고가 브랜드의 명품 전략에 주력하고 있다. 입사 이후 잠시 그룹을 떠나 개인사업을 하기도 했던 마크는 2001년 블랑팡에 마케팅매니저로 합류한 후 다음해인 2002년 블랑팡의 CEO 자리에 올랐다. 마크 CEO는 시계 탄생 이래, 가장 긴 282년의 역사를 가진 블랑팡의 기계식 시계만의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새로운 첨단 기술을 더하는 방식으로 초고가 브랜드경영 전략을 짜고 있다. 창업자 니컬러스의 딸 나일라와 아들 닉, 손자 마크 등을 포함한 헤이엑 가문의 자산은 90억달러로 평가된다.                      

지용웅 대기자  goyow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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