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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산업의 미래AI·빅데이터·디지털로 무장한 패셔놀로지 기업

전 세계 패션 산업 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패션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기업들의 공통점은 신기술을 접목해 소비 주축으로 떠오른 ‘MZ세대’의 요구를 민첩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스스로 ‘패셔놀로지(fashionology·패션과 기술을 뜻하는 테크놀로지의 합성어)’ 회사라고 칭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비자는 변했다. 소비 주축으로 떠오른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1~2004년생)’는 나를 중시하고 맞춤형 패션을 지향한다. 하지만 빅토리아 시크릿은 섹시함을 고수하느라 변화가 늦었다. 결국 빅토리아 시크릿은 편안함을 추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몸을 사랑하자’는 트렌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패션 산업의 세대교체
“섹시함을 강조한 속옷 회사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s Secret)은 남성에게 마케팅하고, 남성의 환상(fantasy)을 여성에게 판다. 42분짜리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는 환상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현실 속에서 산다. 현실 세계에서 여성들은 출근할 때, 운동할 때는 물론 모유수유하고 병간호할 때도 브래지어를 입는다. 모양, 나이, 성 정체성, 민족, 성적 성향과 상관없이 모든 여성을 위한 속옷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2018년 11월 18일. 창업한 지 5년 된 신참 속옷 회사 서드러브(ThirdLove)가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에 빅토리아 시크릿을 저격한 이런 내용의 공개편지를 전면광고로 실었다. 올해 2월 20일, 한때 미국 속옷시장의 3분의 1을 점유한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기업인 L브랜드(L Brands)는 사모펀드에 빅토리아 시크릿 지분 55%를 5억2500만달러(약 6205억원)에 판다고 발표했다. 서드러브의 경고가 있은 지 2년도 안 돼 전통 패션 강자 빅토리아 시크릿은 매각이라는 결말을 맞이했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2016년까지만 해도 미국 속옷 시장에서 점유율 33%를 기록했다. 하지만, 불과 2년 후인 2018년에는 점유율이 24%로 떨어졌다.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는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엔젤’이라고 불리는 늘씬한 8등신 모델이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맞춤형 속옷을 판매하는 미국 서드러브, 소셜미디어(SNS) 사진으로 패션 트렌드를 예측하는 프랑스 휴리테크(Heuritech), 인공지능(AI)으로 소비자의 취향을 분석해 옷을 골라 보내주는 데이터 기반의 미국 스티치픽스(Stitch Fix), 기계가 15초 만에 일명 ‘짝퉁’을 판별해주는 미국 엔트러피(Entrupy)가 대표적이다.
가령 빅토리아 시크릿은 날씬한 여성의 몸을 기준으로 36개 사이즈만 제공하지만, 서드러브는 전 세계 250만 명을 대상으로 이들의 사이즈에 관한 데이터 900개를 수집해 80개 이상의 사이즈를 제공한다. 고객이 기존에 입던 속옷 사이즈를 선택하고, 입었을 때 착용감 등에 대해 답하면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활용해 고객의 몸에 꼭 맞는 크기의 상품을 추천해준다.

국내 패션 업계 무신사·브랜디 등 신흥 강자 주목 
국내 패션 업계 사정도 마찬가지다. 신흥 강자가 전통 강자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패션 산업의 전통 강자인 대기업 계열 패션사들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영난이 더욱 더 깊어지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과 코오롱인더스트리의 패션 부문인 코오롱FnC는 올해 상반기 각각 300억원, 72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모두 전년 상반기와 비교해 적자전환했다. 두 회사는 같은 기간 매출도 각각 7340억원, 4042억원을 기록했다. 모두 전년 상반기보다 15%가량 감소했다. LF는 금융·부동산투자업체(리츠) 코람코자산신탁과 온라인플랫폼 트라이씨클 등을 통한 사업 다각화 노력에도 상반기 매출이 11% 줄어든 7942억원으로 조사됐다. 상반기 신세계인터내셔날(6105억원)과 한섬(5481억원)도 매출이 각각 8%가량 감소했다. 반면 무신사, W컨셉, 브랜디, 지그재그 등 온라인 패션 플랫폼사는 온라인 패션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기존 온라인 쇼핑몰 이상의 역할을 하며 패션 산업 구조를 흔들고 있다.


선두주자는 5000개 브랜드가 입점한 국내 최대 온라인 편집숍 무신사다. 무신사는 올해 상반기 거래액이 전년 상반기보다 60% 늘었다. 특히 자체 제작 브랜드인 ‘무신사 스탠다드’ 매출이 세 배 늘었다. ‘무지하게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라는 온라인 동호회에서 출발한 무신사는 지난해 11월 국내 열 번째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회사)에 이름을 올렸다. 패션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계의 무서운 신흥강자다. 
무신사는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커뮤니티, 국내외 최신 패션 트렌드와 스타일링 방법을 전달하는 패션잡지 발행을 통해 MZ세대의 패션 놀이터로 자리잡았다. 기업과의 단독, 협업, 한정판 마케팅으로 MZ세대를 유혹하기도 했다. 무신사가 지난해 하이트진로와 협업해 선보인 참이슬 백팩은 400개가 5분 만에 품절됐다. 남성이 선호하는 캐주얼 브랜드에 특화돼 10~20대 사이에서 인기지만, 최근에는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한 전략을 짜고 있다. 무신사는 지난해 전년보다 두 배 성장한 거래액 9000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AI 신기술을 도입해 거래액 1조4000억원을 목표로 한다. 브랜디도 상반기 거래액이 50% 이상 늘었다. 

브랜디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올해 5월 온라인 패션 플랫폼 최초로 동대문 패션 상품을 당일 또는 새벽에 받을 수 있는 주문 후 반나절 안에 상품을 받는 ‘하루배송’ 서비스를 도입했다. 브랜디는 AI 알고리즘 분석을 통한 수요 예측 시스템을 구축해 잘 팔릴 상품을 도매처에서 선구매해 하루배송 시스템을 가능하게 했다. 2016년 쇼핑몰·마켓 모음 플랫폼으로 시작한 브랜디는 2018년에는 동대문 패션 판매자의 물류, 배송, 고객대응(CS) 전반 등을 대행해 주는 동대문 풀필먼트(fulfillment) 서비스 ‘헬피’를 선보였다. 누구나 쉽게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브랜디는 2016년 7월 출범해 4년 만에 누적 거래액 3000억원을 돌파했다. 20~3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온라인 편집숍 W컨셉도 올해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증가했다. W컨셉 거래액은 2018년 1500억원, 지난해 2000억원이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연평균 50%대 성장세를 이어왔다. 동대문 의류를 다루는 여성 온라인 쇼핑몰들을 모은 지그재그는 올해 상반기 거래액이 20% 늘었다. 지그재그는 2016년 2000억원에 불과했던 거래액이 지난해 6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사는 4세대 온라인 패션 커머스다. 온라인 패션 커머스 1세대가 G마켓·쿠팡처럼 단순히 소비자와 쇼핑몰을 연결해주는 형태를 말한다면, 2세대는 스타일난다·난닝구 등 개인이 운영하는 독립쇼핑몰, 3세대는 온라인에서 영향력이 큰 인플루언서들이 인스타그램·네이버 블로그 등 SNS를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분류된다. 4세대는 2세대와 3세대를 합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형태의 온라인 편집숍, 쇼핑몰·마켓 모음 플랫폼이다. 여러 브랜드를 한데 모아 고객이 개별 쇼핑몰, 마켓을 직접 찾아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을 해소해줬다. 무엇보다 이들은 앞다퉈 정보기술(IT) 인력을 늘리고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능하다.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고객 맞춤형 상품을 추천해준다.
전문가들은 대기업 중심의 패션사가 부진한 데에는 코로나19 영향이 크지만, 패션영역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MZ세대를 사로잡는 데 속도가 느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MZ세대는 한 브랜드에 다수가 열광해 여러 명이 입는 브랜드보다 자신의 개성을 표현해 줄 수 있는 브랜드를 선호한다. 기존 패션 대기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김근혜 기자  sisanewsn@sisanews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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