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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부자 워런 버핏(Warren Buffett)객장서 놀던 꼬마…‘가치 투자’의 신으로 투자는 인내, 그 돈에 집착하지 말아야

돈을 벌 수는 있지만 이를 집대성해 부를 창조하기는 힘들다. 부를 이루기 위해선 지력과 창의력 그리고 인내심을 갖춰야 한다. 이 3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천재 투자가가 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인 워런 버핏이다. 올해 83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왕성한 투자 활동을 벌이고 있는 벅셔해서웨이의 회장 워런 버핏. 미국에 대공황이 불어 닥친 1930년에 아이러니하게도 20세기 최고의 투자가라고 불리고 있다.


돈의 원리가 궁금했던 아이
워런 버핏은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혹자는 버핏이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고 알고 있지만 그는 증권 중개인이자 훗날 공화당 하원의원을 지낸 하워드 호만 버핏의 아들로 넉넉한 환경의 덕을 보며 성장했다.
버핏은 어린 시절부터 또래들에 비해 돈의 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여섯 살짜리 꼬마 워런 버핏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할아버지 식료품 가게인 ‘버핏 앤드선’에서 놀았다. 어린 버핏은 할아버지의 가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항상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할아버지가 물건을 얼마에 사서 얼마에 파는지, 사람들은 왜 할아버지가 물건을 사는 곳에서 사지 않고 할아버지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곧 버핏은 알게 됐다.


뭔가를 사와서 사온 가격보다 더 비싸게 파는 것을 ‘장사’라고 부르고, 이 행위에서 이윤이 남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버핏은 직접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껌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껌을 팔아 이윤을 남겼다. 버핏은 장사의 원리만 궁금해한 것이 아니었다. 숫자에 관련된 모든 것이 다 신기하고 궁금했다. 숫자 외우기도 좋아했다. 자동차 번호판과 나라 인구, 야구카드에 있는 통계수치 등을 외웠다. 버핏이 숫자에 큰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부모님의 영향력이 컸다. 아버지 하워드 버핏은 주식 중개인이었고 어머니 레일라 또한 숫자 계산에 남다른 능력을 보였다.
8살 때는 식당과 카페를 돌아다니며 병뚜껑을 모으기 시작했다. 자판기 음료수들 중에 어떤 게 가장 잘 팔리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버핏은 이때부터 투자가로서의 잠재력을 보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추측성 숫자보다 실제 현실에서 자신이 직접 정확한 숫자와 확률을 알아내는 것이 정확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우치고 있었다.

나는 35살에 백만장자가 될거야
아버지의 직업 덕택에 버핏은 6~7세부터 주식에 흥미를 느꼈고 여덟 살 때부터 집 서가에 꽂혀 있는 주식 관련 서적에 관심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책에 나온 것처럼 혼자 주가의 등락을 차트로 만들기도 했다. 숫자·통계에 비상한 능력을 보였고 마치 눈으로 사진을 찍은 것처럼 수치를 외우는 남다른 기억력도 갖고 있었던 버핏에게 주식이란 숫자들을 이용한 신비로운 마법과도 같았다. 


버핏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회사인 ‘버핏 앤드 컴퍼니’에서 주식과 관련된 칼럼을 읽거나 집에선 보지 못한 책들을 읽었다. 이곳에서 훗날 버핏의 스승이자 가치투자 이론의 창시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 분석’이라는 책을 알게 되고 이를 수차례 정독했다. 또한 ‘1천 달러를 버는 1천 가지 방법’이란 책을 통해 ‘복리’라는 개념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는 버핏의 투자 인생의 밑바탕이 됐고 이 책은 버핏의 보물이 되기도 했다. 버핏은 이미 11살 때 오마하 공공 도서관의 투자 관련 서적을 모두 읽었을 정도로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했다. 
유년 시절 버핏이 했던 특별한 경험 중 하나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의 사무실 아래층에 있던 ‘해리스 업햄 앤드 컴퍼니’라는 주식거래 중개 회사의 객장을 찾는 일이었다. 버핏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주식시장 증권 시세 표시기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는 ‘나는 35살에 백만장자가 될 거야’라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꾸준히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신문배달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신문을 선호하는지 분석하고 자신이 배달하는 구역에 대해 철저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해 고객의 성향을 파악하고 신문구독을 권유했다. 버핏은 신문배달로 모은 돈을 이용해 직접 주식투자를 하기도 했다. 버핏은 ‘1천 달러를 버는 1천 가지 방법’에 나온 ‘일단 시작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라는 말에 큰 감명을 받아 누나 도리스를 설득해 주당 38달러를 주고 ‘시티스 서비스’라는 회사의 주식을 3주씩 샀다. 물론 부모에게 받은 돈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줄기차게 해온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아둔 쌈짓돈으로 주식 투자에 입문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그가 모은 재산은 6000 달러였다. 성적이 떨어지면 아버지의 통제가 들어왔기 때문에 자유로운 생활을 위해 성적관리 또한 열심히 했다. 돈 벌기에 재미를 붙인 버핏은 굳이 대학에 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 입학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1년 만에 집에서 가까운 네브래스카대로 편입하게 된다. 대학 진학이 불필요한 일이라고 여겼던 버핏은 막상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어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당했다. 하지만 바로 이 일을 계기로 버핏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과 만나게 된다. 
하버드대학원에 낙방한 후 우울해 하던 그는 우연히 보게 된 컬럼비아대를 소개하는 광고 전단에서 눈에 익은 두 사람의 이름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 그가 닳도록 읽었던 ‘현명한 투자자’의 저자인 벤저민 그레이엄, 데이비드 도드가 교수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가치투자의 대가인 벤저민 그레이엄 문하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그는 이런 학문적 뒷받침을 바탕으로 백만장자의 꿈을 3년 앞당길 수 있었다. 


돈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는 현재의 주가나 시세에 따른 판단이 아니라 그 주식이 지닌 회사의 미래성과 경제성을 따지는 ‘가치 투자’의 창시자인 그레이엄의 제자가 되고 싶었다. 그레이엄은 책을 통해 이미 버핏에게 주식 투자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알려준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다. 버핏은 입학 지원서에 ‘두 거장은 저에게 올림푸스 산에서 이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처럼 여겨지던 분들입니다’라고 까지 쓸 정도였다. 이처럼 버핏의 인생에서 가장 손에 꼽을 만한 인물은 바로 가치 투자의 영원한 스승인 그레이엄이다. 그레이엄은 어떤 회사의 주식이 낮게 평가돼 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 회사가 주식 중개인들에게 덜 알려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스로 철저한 연구를 통해 숨겨진 가치를 찾아냈다. 이를 ‘몇 모금 더 피울 수 있는 담배꽁초를 찾는 일’에 비유하기도 했다. 

버핏은 회사와 그들의 주식을 평가하기 위해 수치를 꼼꼼하게 이용해야 한다는 그레이엄의 철칙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는 ‘주식은 기업의 일부로 봐야 하고 기업의 가치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주식 투자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겼다. 버핏이 본격적으로 투자가의 길에 들어선 것은 1954년, 그레이엄의 자산 운용사 그레이엄 뉴먼에서 증권 분석가로 일하면서부터다. 당시 수전 톰슨과 결혼한 후 두 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던 터라 버핏은 검소한 생활을 유지했다. 20살에서 26살이 되는 사이 버핏의 자산은 9800달러에서 15만 달러로 늘어나 있었다. 버핏은 돈 모으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았다. 다만 돈이 불어나는 원리를 터득하는 것에 큰 흥미를 느꼈다. 
26살에 고향에 돌아온 버핏은 ‘버핏 어소시에이츠’라는 투자조합을 설립했다. 누나와 친구, 주변 인맥 7명을 총동원해 그가 마련한 자금은 10만 달러였다. 버핏 투자조합은 1969년 문을 닫았는데 설립 초기부터 해산할 때까지 연평균 29.5%의 놀라운 복리 수익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다우지수의 상승률은 연간 7.4%에 불과했다. 1959년에는 버핏의 인생에서 빠져선 안 될 인물이 등장한다. 지인의 소개로 인연을 맺게 된 찰리 멍거가 그 주인공이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변호사로 경력을 쌓고 있던 멍거는 버핏에게 자극을 받아 전문적인 투자자의 길로 들어섰다. 버핏에게 멍거는 일생의 사업 동반자이자 훌륭한 멘토다. 벅셔해서웨이 초기 성공의 큰 동력으로 꼽히는 블루칩 스탬스, 시즈캔디즈 등 캘리포니아에서 기업들을 인수할 때 두 사람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버핏은 “그레이엄의 가르침과 달리 멍거는 염가 주식만 찾아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줬다”며 자신의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스승이라고까지 말한다. 

1962년은 버핏의 투자 인생에서 매우 특별한 해로 기록된다. 32살이 된 버핏은 당초 목표보다 3년이나 앞당겨 꿈에 그리던 백만장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부터 주식 투자뿐만 아니라 회사 자체를 매입해 수익을 내겠다는 또 다른 ‘부의 목표’를 설정했다. 버핏은 망해 가는 섬유회사 벅셔해서웨이의 주식을 대거 사들인 후 투자 지주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스승 그레이엄에게서 배운 바에 따르면 버핏의 눈에 벅셔해서웨이는 ‘숨은 보석’처럼 보였다. 1965년 버핏이 경영권을 잡은 후 벅셔해서웨이는 놀라운 성장세를 기록했다. 1962년 버핏이 벅셔해서웨이를 인수할 당시 18달러에 불과했던 주가는 현재 17만 달러를 웃돌고 있다. 
워런 버핏은 기업의 겉모습과 수치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남다른 통찰력이 강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는 ‘정직하고 능력 있는 기업의 주식을 발굴한다’는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투자를 실행하며 전문투자가의 삶을 살고 있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지주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으로, ‘20세기 100년 동안 가장 탁월한 투자가’이며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큰 손’이란 명성을 지니게 된 것은 이러한 삶에서 얻어진 것이다.

버핏이 존경받는 이유
대개 부자들은 ‘돈만 밝히는 냉혈한’으로 치부되곤 한다. 부자에 대한 대중의 적대감은 비단 우리 사회만의 분위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워런 버핏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부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 특히 미국에서는 그를 ‘오마하의 현인’으로 부르며 존경심을 표한다. 동네 아저씨 같은 차림새에 검소한 생활 태도, 통 큰 기부 의식 등 돈을 잘 벌기도 하지만 잘 쓰는 지혜를 갖췄기 때문이다. 2006년 버핏은 또 한 번 뉴스의 주인공이 됐다. 이번에는 ‘투자’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었다. 그는 단계적으로 자신의 재산 99%를 기부하겠다고 공언했고 가장 큰 몫은 절친한 친구 빌 게이츠 부부가 운영하는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넘기겠다고 밝혔다. 2006년부터 버핏이 낸 누적 기부액은 올해분을 포함해 170억 달러, 약 19조4000억 원을 넘었다. 버핏은 기부를 발표하기 10여 년 전부터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버핏은 자신과 같은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번 돈에 대해 스스로 납세 신고서를 작성하고 세금을 빠뜨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13살 무렵에 제출한 첫 납세 신고서를 보관할 정도다. 여느 자산가와 달리 버핏은 일찌감치 세 명의 자녀에게 자신의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돈 대신 ‘자신감’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물려줬고 큰아들 하워드 버핏은 농부로, 막내아들 피터 버핏은 음악가로 살고 있다.                                                  

지용웅 대기자  goyow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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