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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 로더 파브리치오 프레다 CEO철저한 연구와 실험 통해 개발한 고급 화장품 ‘ESTEE LAUDER’

1946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된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 로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최상의 것을(Bringing the best to everyone we touch)”이라는 창립자 에스티 로더 여사의 이념 아래 기능성 스킨 케어, 트렌디하고 세련된 메이크업 제품, 고혹적인 향수 등을 선보이고 있다.

 

전설적인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 로더’ 스토리
1946년 다목적 슈퍼-리치 크림, 클렌징 오일, 크림 팩, 스킨 로션 등 4품목으로 출발한 에스티 로더는 1953년 ‘유스 듀(Youth Dew)’라는 바스 오일용 향수로 미국 최고의 판매를 기록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적인 히트 상품으로 성장을 거듭, 현재 전 세계 100여 개국에 탑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에스티 로더의 성장 비결은 첨단 과학을 기초로 한 철저한 연구와 실험 결과로 탄생되는 우수한 품질의 제품들과 친절한 고객 서비스에 있다. 즉 설립자인 에스티 로더 여사의 경영 철학이자 방침인 ‘세계 최고의 상품’ 개발에 매진해 온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에스티 로더 여사는 미모에 무척 신경을 쓰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연하인 아버지 사이에서 1910년 태어났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 무척 사랑했는데, 어머니는 자기보다 어린 남편에게 좀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어린 에스티가 여성의 미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인식하게끔 했다.


그들 가족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어느날 피부과 의사인 에스티의 삼촌이 미국으로 여행을 왔다. 그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고 삼촌은 에스티의 집에 오래 머무르게 되었다. 어느날 에스티가 비누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있는데 이를 목격한 삼촌이 이렇게 말했다. “비누로 세수를 하는 것은 피부에 좋지 않단다.” 그리고 삼촌은 피부과의 지식을 바탕으로 클렌징 제품을 같이 만들어 볼 것을 권했다. 삼촌과 함께 만든 클렌징 제품은 피부를 한층 더 아름답게 가꾸어 주었다. 에스티는 집의 한구석에 작은 연구실을 만들고 클렌징 제품을 본격적으로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그녀의 고객은 가족과 친구들이었다. 성인이 된 에스티는 조셉 로더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후 에스티 로더는 평범한 가정 주부로서 친구들과의 티타임을 즐기고 아이들을 키우는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과의 티타임에 당시 유명한 헤어 살롱 원장이 동석을 하게 되었다. 그날도 에스티 로더 여사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피부를 가꾸는 것이 좋은지, 본인이 만든 클렌징과 크림 등의 샘플을 나눠주었고 자연스럽게 헤어 살롱 원장도 에스티 로더 여사가 만든 제품을 사용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에스티 로더 여사가 만든 제품을 사용해 본 원장은 여사에게 본인의 살롱에 작은 카운터를 열 것을 제안했고 에스티 로더 여사는 이를 수락하여 아주 작은 그녀만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녀의 최초의 제품들은 총 4개였으며 클렌징 오일, 토너, 크림, 마스크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녀의 적극성과 제품력은 헤어 살롱 손님들을 반하게 만들었고 이에 헤어 살롱이 점차 커져 가면서 1호점, 2호점, 3호점을 열게 되면서 에스티 로더 여사의 작은 사업도 번창하게 되었다. 나날이 사업이 커져 감에 따라 에스티 로더 여사는 당시 최고의 백화점인 삭스에 입점할 것을 결심했다. 그러나 삭스 백화점에서는 에스티 로더 브랜드의 입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에스티 로더 여사는 샘플을 만들어 삭스 백화점 앞에서 ‘에스티 로더입니다’를 외치며 백화점을 찾는 손님들에게 샘플을 증정했다. 샘플을 사용해 본 수많은 사람들이 삭스 백화점에 ‘에스티 로더를 어디서 구입할 수 있냐?’를 물어왔고 드디어 에스티 로더 브랜드는 백화점 입점에 성공하게 되었다. 그날부터 에스티 로더 여사의 사업은 더욱 더 번창하였고 현재는 전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로 수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에스티 로더는 브랜드의 차별화를 위해 힘쓴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다른 경쟁사들이 약국에서 화장품을 판매할 때 에스티 로더는 브랜드 고급화 전략으로 백화점을 유통 채널로 하여 향수를 판매하였다. 직원 교육과 광고, 판촉 전략까지 아우르는 그녀의 독보적인 경영 방식으로 에스티 로더는 고유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추며 급성장하였다. 이러한 에스티 로더의 노력은 아들 레오나드 로더와 손자 윌리엄 로더가 계승하고 있다. 레오나드 로더는 그의 어머니처럼 전 세계 에스티 로더 매장의 직원 교육을 직접 담당하였으며 창업 초기에 만들어진 판매 매뉴얼을 개정하는 등 에스티 로더의 창업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갔다. 이는 로더 가문의 경영진들이 에스티 로더가 일궈낸 가업에서 가문의 정체성을 찾고 이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기업의 가족 경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 대기업의 가족 경영을 나타내는 ‘재벌’이라는 용어는 권력과 재력을 독점하고자 하는 기업의 폐쇄적인 소유경영을 의미한다. 이러한 재벌의 독점적인 기업 경영 방식은 대를 이어 축적된 부가 다시 경영권 계승을 통해 가족에게 이어져 내려가는 구조를 고착화한다. ‘금수저’와 같은 용어가 만들어지듯 부의 대물림 등의 사회 비판적인 현상이 왜곡된 기업의 가족 경영 방식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다.

62년 역사의 에스티 로더 최고 경영진 자리에 오르다
에스티 로더 한국 지사는 1991년 설립되었으며 여성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꾸어 주는 에스티 로더의 제품들을 수입, 한국에 판매하고 있다. 1995년에는 에스티 로더가 입점한 거의 모든 백화점에서 외국 화장품 부문 매출 1위를 기록할 만큼 많은 여성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다. 파브리치오 프레다 CEO는 62년 역사의 에스티 로더에서 최고 경영진 자리에 오르는 실질적인 첫 외부 인사로 기록될 듯하다. 사실 2000년 에스테 로더는 전문 경영인 프레드 랭해머를 CEO에 임명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2004년 윌리엄 로더가 CEO 자리에 오를 때까지 자리를 닦고 지켜준 인물로 비쳐졌을 뿐이다. 랭해머 임명 당시 이미 윌리엄 로더가 조만간 그를 대신할 것으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로더 가문의 갈등이 표면화한 것은 이사진과 핵심 간부들 간의 정례 전략 회의에서다. 프랑스의 기능성 화장품 판매업체인 알레스 그룹 인수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당시 윌리엄 로더의 삼촌인 로널드 로더는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인 반면 그의 아버지 레너드 로더 회장은 이에 반대했다. 아버지와 삼촌 사이에서 의견 개진조차 할 수 없었던 윌리엄 로더는 무력감에 빠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는 생산적인 논의의 장이 되지 못한 채 가문의 불화만 확인시켜준 꼴이었다. 펀드운영업체 매닝 앤 내피어 어드바이저의 크리스찬 앤드리치 매니저는 프레다 영입을 “가족경영으로 유명한 에스테 로더에 일대 변화”라고 평했다. 

밀레니얼, 접근성 향상, 온라인 플랫폼
파브리치오 프레다는 “위기 상황은 내부 반대 때문에 방치했던 문제를 개선할 좋은 기회다. 위기가 오면 반대 세력의 저항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또 파브리치오 프레다 최고경영자(CEO)는 “여행 소매는 회사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채널”이라며 에스티 로더 화장품 충성 구매자들의 첫 구매의 59%는 공항 매장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이에 에스테 로더는 공항의 광고를 늘리고,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며, 온라인으로 구매하고 공항에서 픽업하는 새로운 쇼핑 옵션을 추가하는 등, 공항 소매영업에 많은 공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객들이 공항에서 쇼핑을 하면 기내 좌석까지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테스트하고 있다. 또한 에스티 로더가 미래를 준비하는 혁신적인 처방을 내놓아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에스티 로더는 안티에이징에 집중하는 경향이 짙었다. 당연히 주요 타깃 소비자는 중장년층에 집중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초와 기능성 제품이 연상되며 젊은층 보다는 중장년층이 선호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아울러 유통 채널에서도 백화점이나 면세점 등에서 주로 판매됐다. 이 때문에 럭셔리한 고가 화장품이란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반면, 대중적인 채널에서는 쉽고 편리하게 구매할 수 없다는 접근성의 한계를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에스티 로더는 혁신적인 도전에 돌입했다. 중장년층에 집중해온 전략에서 벗어나, 18~34세 사이의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해 ‘에스티 에딧’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해 일선에 배치했다. 보다 젊은층을 공략하는 만큼 유통망에도 변화를 줬다. 백화점 보다는 화장품 멀티숍인 세포라(sepora)와 온라인 쇼핑몰을 선택했다. 북아메리카 지역 320여개 세포라 지점에 론칭될 예정으로,   공식 홈페이지도 가동한다. 밀레니얼 세대들을 위한 다양한 디지털 마케팅도 준비를 마쳤다. 지난 2015년 11월에 미국의 10대 패셔니스타 켄달 제너(Kendall Jenner)를 전속모델로 발탁했으며, 한국계 모델이자 뷰티 블로거인 아이린 킴(Irene Kim)을 글로벌 뷰티 컨트리뷰터로 위촉했다.
에스티 로더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반응이다. 미 시장조사기관 NPD그룹 카렌 그랜트(Karen Grant) 부사장 겸 글로벌 산업 분석가는 중년층을 겨냥한 안티에이징 사업과 함께 젊은 층을 공략하는 것 역시 에스티 로더에게 동일하게 중요하다며, 새 컬렉션 론칭에 대해 “이는 에스티 로더에게 필수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또 프레다는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모든 브랜드는 젊은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어야만 한다. 이는 필수적이다. 세포라는 해당 시장에 있어서 성공의 공식을 갖고 있는데다 밀레니얼 세대 소비자들에 대해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시장 상황에 대해 굉장히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다. 하지만 에스티 로더는 이에 대해 굉장히 뒤쳐져 있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티 로더와 세포라, 이 둘의 만남은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 굉장히 영리한 파트너쉽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미 패션 전문지 WWD와의 인터뷰에서 “에스티 로더는 세포라와의 협업을 통해 젊고 현대적인 소비자를 향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을 적용하고자 했다. 에스티 에딧은 오늘날 세포라 고객을 공략하기에 훌륭한 브랜드이며 세포라는 에스티 로더가 젊은 소비자층에게 브랜드를 소개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밝혔다. WWD는 에스티 에딧의 첫 1년 예상 소매 매출이 약 6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에스티 로더가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한 신규 컬렉션 ‘에스티 에딧(Este Edit)’는 총 82개 제품(메이크업 72종과 스킨케어 10종)으로 구성됐다. 제품의 용도와 피부 타입에 따라 카테고리를 분류하는 전통적 방식을 탈피해 ‘뷰티 사고방식(Beauty Attitude)’에 따라 카테고리가 분류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에스티 로더의 이같은 행보는 미국 시장에서 베이비붐 세대가 저물어가고 밀레니얼 세대가 부상하고 있음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미 시장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에 따르면 미국 내 밀레니얼 세대는 2015년까지 753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같은 시기 7490만 명을 기록한 베이비붐 세대(51~69세)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지용웅 대기자  goyow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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