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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 M&A 성공시킨 ‘로버트 아이거’혁신DNA 끝없는 도전에 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인기를 끌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어벤져스의 히어로들. 그리고 스타워즈 제다이들과 겨울왕국의 엘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모두 ‘디즈니’ 소속이라는 점이다. 이름만 들어도 흥행의 느낌이 물씬 나는 이런 많은 프렌차이즈들이 한 자리로 모일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현 디즈니의 CEO 로버트 아이거의 도전정신 때문이다. 디즈니 혁신의 역사엔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창업주인 월트 디즈니다. 디즈니는 1928년에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를 선보이며 지금까지도 디즈니의 간판 캐릭터인 미키 마우스를 탄생시켰고, 1940년엔 애니메이션과 음악을 결합한 ‘판타지아’를 내놓아 돌풍을 일으켰다.


디즈니 제국, 혁신을 앞세워 위기를 돌파
디즈니의 도전이 가장 빛을 발한 때는 2차 세계대전 전후이다. 디즈니는 전운이 짙어지던 1937년 당시 엄청난 금액이었던 149만9,000달러를 투자, 첫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만들었다. 사회 분위기가 암울할수록 대중들을 웃게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예상은 적중해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면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지금도 리메이크되고 있다.
디즈니의 사업 영역은 엄청나다. 영화, TV, 홈비디오 제작·유통, 테마파크, 출판, 음악 등 거의 모든 콘텐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디즈니는 기술의 발달 등 사업 환경이 변할 때마다 시대적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선두에서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해왔다. ‘선진국 10억명 인구가 디즈니 속에서 태어나 디즈니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나이를 먹지 않는 왕국’ 등의 말은 디즈니의 혁신 DNA와 생명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디즈니는 몇 차례의 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혁신을 앞세워 위기를 돌파해 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디즈니의 도전은 90년의 역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1928년 최초의 만화 캐릭터인 미키마우스를 선보인 디즈니는 1930년대 미키마우스 클럽을 탄생시키면서 캐릭터 관련 상품과 서적 등을 팔기 시작했다. 지금도 엄청난 부가가치를 올리고 있는 디즈니 캐릭터의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use)’의 전범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1940년대에는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고, 1950년대에는 TV 방송과 함께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과 테마파크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980년대 디즈니는 닌텐도 게임의 열기를 놓치지 않고 게임사업에 뛰어들어 사업을 확장했다. 지금도 월트디즈니그룹 산하의 디즈니 인터랙티브 미디어그룹은 온라인, 모바일, 비디오게임을 망라하는 사업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어 1990년대 들어서는 미국 3대 공중파 방송사 중 하나인 ABC 등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방송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현재 디즈니는 여러 사업 분야 중에서도 방송과 인터넷을 아우르는 미디어 네트워크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ABC를 비롯해 어린이 전문 방송 ‘디즈니 채널’ ‘ABC 패밀리’ ‘SOAPnet’ 등의 채널과 ‘스테이지9디지털 미디어’ 등의 제작사, 그리고 ‘라디오 디즈니 네트워크’ 등을 갖고 있다. ABC가 8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스포츠 전문방송 ESPN의 가치는 1996년 디즈니가 ABC 인수를 위해 쏟아부은 190억달러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디즈니는 월트 디즈니와 로이 디즈니 사후 휘청거리다 1984년 취임한 CEO 마이클 아이스너에 의해 2000년대까지 수많은 명작을 흥행시키고 많은 사업을 성공시키며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아이스너는 독단적인 회사 운영으로 많은 적을 만들어 2005년 물러나게 되었고 그 뒤를 이어 로버트 아이거가 취임하게 되었다. 


아이스너 회장 밑에서 ABC그룹 회장과 월트디즈니 인터내셔널 사장을 역임하며 경영수업을 받은 아이거의 `디즈니 부흥계획`은 아이로니컬 하게도 아이스너의 실책을 만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아이스너 회장은 1984년 디즈니에 영입된 뒤 디즈니 파크를 해외에 개장하고, ABC와 미라맥스 등을 인수하는 등 적극적인 사업확장을 통해서 디즈니를 오늘날의 세계적인 복합 미디어 그룹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하지만 그의 독선적인 성격과 경영스타일 때문에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스너는 월트 디즈니의 조카인 로이 디즈니를 비롯한 창업자 집안과의 갈등, 제휴사인 픽사, 미라맥스 등과의 결별로 인해 근래에 디즈니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특히 그가 내쫓은 제프리 카젠버그가 드림웍스로 건너가 ‘슈렉’으로 대히트를 친 반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업부는 몇 년간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지 못한 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아이거는 캘리포니아 북부 에머빌로 날아가 픽사의 스티븐 잡스를 만났다. 아이스너와 갈등을 거듭하던 잡스는 지난해 디즈니와의 영화 배급 제휴관계를 끝내고 2006년부터 다른 스튜디오를 통해 영화 배급을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첫 방문은 “직접 유대관계를 맺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아이거의 설명대로 별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거는 픽사를 다시 방문했고 그 뒤로 디즈니에 대한 잡스의 비난 발언이 크게 수그러졌다. 잡스는 심지어 픽사의 실적 발표회 자리에서 아이거를 공개적으로 칭찬하기도 했다. 디즈니와 픽사 간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우호적인 대화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주변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디즈니 직원들은 아이스너가 전략기획팀을 통해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까지 일일이 개입한다며 불만이 컸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가로막는 ‘전략파괴팀’이라는 오명도 붙였다. 테크놀러지에 관심이 많은 아이거는 이후 디즈니의 TV물을 애플의 아이팟에서 볼 수 있게 하는 등 플랫폼 혁명도 이끌어냈다. 특히 로버트 아이거는 IT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디즈니의 TV 작품들을 곧바로 애플의 아이팟에서 볼 수 있게 작업을 추진하였고 2006년에는 CG애니메이션을 공동작업하던 픽사를 인수해 자회사로 두었다. 픽사는 ‘토이스토리’ ‘몬스터’ ‘인크레더블’ 등을 만들며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업체다. 애니메이션 중심이던 디즈니에 디지털 기술을 추가, 창의성이 시들해진 디즈니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려는 조치였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미드 ‘위기의 주부들’과 ‘로스트’, ‘그레이 아나토미’ 등 TV 시리즈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고 2009년 마블 코믹스를 합병하여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한 시리즈들을 배급하기 시작했다. 또한 2012년에는 루카스필름과 루카스아츠를 인수하여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디즈니에 편입시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를 선보였는데 스타워즈 팬들은 마블 스튜디오 제작 영화들의 성공을 말미암아 스타워즈도 엄청난 작품성을 보일 것으로 많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20세기 폭스의 인수… 콘텐츠 공룡으로 성장
2017년 12월에는 영화사 20세기 폭스를 인수하여 마블 유니버스의 쪼개졌던 히어로(X맨, 데드풀 등)이 한 자리에 모일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이로써 ABC 방송, ESPN, 픽사, 마블, 루카스 필름 등을 거느리게 되어 전세계의 미디어 콘텐츠 사업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로버트 아이거는 폭스의 인수를 성공시킴으로써 이전 계획대로 2019년에 은퇴하지 않고 2021년까지 회장 겸 CEO로 남을 의향을 발표했다. 디즈니. 로버트 아이거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소비자의 니즈를 완벽히 파악할 줄 아는 인물로 디즈니가 강력한 힘을 더욱 크게 발휘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 그리고 언제 그 도전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을 가졌다. 여우를 삼켜버린 쥐. 아이거의 디즈니는 이제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할지 전 세계의 팬들이 기대하고 있다.                                                  

이철영 대기자  lcyfe@sisanew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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