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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 세계 정상에 오른 로레알그룹 장폴 아공 회장화장품은 기술이자 과학이다 이미지만으론 글로벌 성공 못해…

화장품 산업은 진입 장벽이 낮아 전 세계에서 매년 수천 개 기업이 탄생한다. 무한 경쟁 속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기업도 부지기수다. 프랑스 로레알(L'Oreal)은 세계 화장품 시장에서 25년간 정상을 지켰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랑콤과 입생로랑부터, 올리브영 같은 드러그스토어(약국과 잡화점이 결합한 형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라로슈포제와 로레알 파리까지 전부 로레알의 브랜드 자산이다. 글로벌 브랜드만 34개인데, 로레알이 직접 만든 것은 세 개뿐이다.


M&A와 위기 돌파력이 성장 동인
흔히들 화장품은 꿈과 이미지를 판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 최고 화장품회사인 로레알 장폴 아공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기술력으로 승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엄중한 경고인 셈이다. 그는 “화장품이 이미지나 포장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끝났다. 미래의 화장품 시장은 근원적으로 기술의 차이가 중요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소비자가 결국에는 품질의 차이를 느끼고 효능이나 효과가 좋은 제품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에 기술이 받쳐주지 않는 회사는 자연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100년 전 최초 염색약을 개발한 로레알그룹은 기술개발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연간 매출 중 3.5%를 기술개발에 투자하고 있으며, 전 세계 16개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인력만 3800여 명에 달한다. 그들은 노화 방지, 새로운 메이크업 기술, 새로운 모발 염색 기술 등 화장품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기술을 연구하며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로레알그룹은 1964년 랑콤 인수를 시작으로 지난 50여년간 공격적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브랜드를 하나둘 쌓아올려 사업을 키웠다. 이렇게 다양한 브랜드를 관리하면서도 세계 모든 곳에서 고른 실적을 내며 순항 중이다. 109년 전 프랑스 청년 외젠 슈엘러가 모발 염색제를 만들면서 시작한 이 기업은 어떻게 세계 화장품 시장을 석권하게 됐을까. 아공 회장은 로레알 역사상 네 번째 최고경영자(CEO)다. 창업주 슈엘러가 세상을 떠난 1957년 이후 로레알은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는데 첫 전문 경영인이었던 프랑수아 달의 재임 기간만 27년이었다. 아공 회장의 전임자인 린지 오언 존스도 18년간 자리를 지켰다. 아공 회장은 올해로 11년째다. 그의 재임 중 로레알의 연매출은 2006년 158억유로에서 지난해 258억유로로 64% 증가했다.
아공 회장은 파리경영대학원(HEC Paris) 졸업 후 1978년 로레알에 입사했다. 입사 3년 만에 당시 실적이 최악이었던 그리스 지사를 맡아 살려내며 위기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아시아 금융 위기가 터진 1997년에는 아시아 총지사장을 맡아 시장을 또 살려냈다. 2001년 미국 지사장 때는 9·11 테러 이후 모든 화장품 브랜드 매출이 곤두박질한 상황에서 백화점 대신 미용실과 대중용품 시장을 공략해 성장을 이끌어내는 기지를 발휘했다. 이렇게 78년 입사 이래 로레알의 주요 요직을 거치며 역량을 키웠다. 다양한 사업부와 지사장을 거치며 국제적인 커리어를 쌓았고 그리스 지사장, 로레알파리 사장, 비오템 인터내셔널 사장, 독일 로레알 지사장을 거쳤다. 


아공 회장은 앞으로도 위기와 기회가 공존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경영 환경이 “어느 때보다 변덕스럽고(volatile) 불확실하고(uncertain) 복잡해(complex)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ambiguous)”고 했다. 그러면서도 두 가지 기회를 얘기했다. 소셜 미디어와 셀카 문화였다. 그는 “오늘날 소비자들은 셀카를 찍어 인스타그램·페이스북에 공유하기 위해 색조 화장에 더 신경 쓴다”면서 “로레알에는 더 없이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또한 “로레알의 목표는 ‘모두를 위한 아름다움(beauty for all)’”이라면서 “그러려면 소비자가 원하는 화장품을 잘 만드는 브랜드, 또는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을 손에 넣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로레알은 현재 140개국에서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신흥 시장을 더 공략해 20억명 수준인 로레알 소비자를 2020년까지 10억명 더 늘릴 계획이다. 그는 “시장별로 소비자의 취향과 피부, 머릿결, 화장품 사용법 등이 다 다르다. 지금도 새로운 소비자층과 수요가 생기고 있는데 그때마다 필요한 브랜드를 인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계화+현지화+디지털화
로레알은 세계화와 현지화 양쪽 모두에 능한 기업이다. 로레알은 새 시장을 공략할 때 먼저 대표 선수인 ‘랑콤’을 앞세워 백화점 유통망을 선점하고 인지도를 높인다. 그다음 ‘메이블린’ ‘로레알 파리’ 같은 중저가 브랜드로 대중성을 확보한다. 마지막으로 지역 소비자가 원하는 브랜드를 내놓거나 유망한 현지 기업을 인수해 시장을 석권한다. 이렇듯 로레알은 세계화와 현지화를 동시에 노리는데 서로 충돌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균형을 맞추는 게 경영이다. 경영은 일종의 예술 아닌가. 복잡한 세상에선 양쪽 전략 모두 필요하다. 브랜드 정체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동시에 시장별로 맞춤형 제품을 선보여야 한다. 일례로 한국 소비자들은 피부에 바르는 기초 화장품을 중시하는 반면, 미국 소비자는 색조 화장품을 선호한다. 로레알의 중저가 브랜드 ‘로레알 파리’는 모든 시장에서 ‘나는 소중하니까(Because I’m worth it)’ 캠페인으로 구축한 브랜드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로레알 파리’가 중국·미국·러시아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조금씩 다르다. 지역별 연구소에서 제품 개발과 생산을 나눠서 하기 때문에 현지화가 가능한 것이다.”

특히 로레알은 매출의 3.3%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투자 규모는 물론 연구원 수도 업계 최고 수준이다. 연구원 3800여명이 매년 등록하는 특허만 500여개다. 핵심은 '현지 특성을 어떻게 살리느냐'다. 로레알은 프랑스 글로벌 연구소를 포함해 미국·일본·중국·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 7개국에 지역 연구소를 운영한다. 지역 연구소는 각국의 화장품 사용 습관, 피부 특성 등을 토대로 세부 연구를 진행한다. 일례로 ‘로레알 파리’는 브라질 여성들이 헤어컨디셔너를 사용한 후에 씻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해 씻어내지 않아도 가벼운 머릿결을 만들어주는 제품을 개발했다.
아공 회장이 1년 중 본사에 머무르는 시간은 합쳐서 절반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 해외 출장이다. 각국의 로레알 브랜드 매장을 찾아가 시장 흐름을 파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은 인터넷에 접속해 ‘온라인 출장’도 다닌다. “전자상거래와 소셜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전자상거래 부문은 로레알 연간 매출의 6% 이상을 차지하며 작년에 33%나 성장했다. 광고 지출 중 디지털의 비중도 30%를 넘어섰다. “솔직히 7년 전엔 디지털화가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몰랐다. 

당시 디지털업계 친구들에게 많은 얘기를 들은 뒤에야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우리 생활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화장품 산업에도 ‘디지털 쓰나미’가 덮칠 것이라는 위기의식에 휩싸였다. 그래서 (옛 성에서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탑의 종을 울리듯) 종을 울렸다. 로레알의 강점은 그룹 차원에서 종을 울리면, 곧바로 실행에 나선다는 것이다. 2010년 이후 4년간 디지털 전문가 1600명을 외부에서 뽑아 마케팅팀에 완전히 녹아들게 했다. 앞으로 신규 마케팅 직원은 반드시 디지털 업무 능력을 갖추도록 할 계획이다. 2013년에는 최고디지털책임자(CDO) 직함을 만들고 루보미라 로셰를 CDO로 영입했다.”
로셰 CDO 임명 당시 그의 나이는 37세로 글로벌 기업 중 최연소 CDO였다. 기존 최고정보책임자(CIO)는 재무·회계·생산관리 등의 IT 분야만 다뤘지만, CDO는 모바일·빅데이터 등 여러 방면에 대한 지식·경험을 갖고 제품 개발·마케팅에 직접 관여한다. 아공 회장은 디지털 역량이 강한 브랜드로 2014년 5억달러(약 5600억원)를 주고 인수한 '닉스'를 들었다. 닉스는 재미교포 토니 고가 1999년 미국에서 창업한 색조 화장품 브랜드다. 닉스의 작년 매출은 전년보다 125% 증가했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는 끊임 없는 변신
최고 정상을 지키는 비결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큰 틀에서 기업 문화와 비전, 경영 전략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로레알은 세상의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해 왔다. 그것이 성공의 필수 조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미래를 준비해왔다. 과거나 현재에 연연하지도, 경쟁자를 신경 쓰지도 않는다. 로레알은 20년 전에도 1위였지만, 20년 전 로레알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10년 후에는 또 다른 기업으로 바뀔 것이다.”
또한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로레알만의 기업 문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로레알 조직은 결정권이 본사에 몰려 있지 않고 분산된 편이다. 시판·백화점·헤어살롱·병원약국 네 개의 사업부가 있다. 각 사업부를 네 명의 사장이 이끌고 각 사업부 산하 개별 브랜드들도 자율적으로 일한다. 디지털 시대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구조다. 디지털 시대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제안하고 시험해봐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는 본사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과 문화 속에서 나온다. 로레알의 중요한 혁신이 한국이나 중국·미국·영국 지사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윤리로 무장해야 생존한다
장 폴 아공은 “21세기 기업은 무엇보다도 존재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며 “향후 50년은 강력한 윤리 원칙을 가진 기업이 가장 강한 기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윤 창출은 더 이상 기업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며 기업의 역할이 확실하게 바뀌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최근 7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1위(2015년 상반기 판매량 기준) 자동차메이커 폴크스바겐그룹이 배출가스 조작이란 ‘거짓말’로 한 순간에 휘청이는 것을 볼 때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아공 회장이 강조하는 기업의 역할은 ‘완전한 사회 구성원’이다. 기후변화, 자원 부족, 양극화 등 최근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위기들을 풀어 나가는 데 기업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로레알그룹의 목표는 언제까지나 ‘모두를 위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이제 세계 130개국에 진출한 로레알의 전사적 목표는 ‘공유 뷰티(Sharing Beauty With All)’다. 지금까지 고객의 외모를 빛나게 해 주는 화장품으로 ‘미(美)’를 추구해왔다면 앞으론 환경적·사회적 문제를 개선하면서 소비자들과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을 나누겠다는 의지다. 로레알은 5년 뒤인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 물 소비량, 포장 등 폐기물 양을 2005년 대비 60%까지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지용웅 대기자  goyow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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