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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세계적 명품, 까르띠에 Cyrille Vigneron럭셔리, 좌뇌 기술과 우뇌 예술의 조화 정교한 세공 컨템퍼러리 클래식 지향

까르띠에는 지난 2016년 1월 시릴 비네론(55) 최고경영자를 선임했다. 전임자 스타니슬비네론 CEO는 1988년 까르띠에에 입사해 일본지사 대표, 유럽지사 매니징 디렉터 등 요직을 거쳤다. 2014년 LVMH로 옮겨 일본지사 대표를 지냈다. 경쟁사로 떠난 사람을 ‘구원투수’로 다시 모셔온 셈이다.

까르띠에(Cartier)는 주얼리를 비롯해 향수, 시계, 필기구, 안경, 스카프 등을 제작 · 판매하는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이다. 세공기술자인 루이 프랑스 까르띠에(Louis Francois Cartier)는 1847년 그의 스승이었던 아돌프 피카르(Adolphe Picard)의 아틀리에(Atelier, 작은 공방)를 인수했고, 자신의 성(姓)을 따 ‘메종 까르띠에(Maison Cartier)’로 변경했다. 1850년대 까르띠에는 섬세한 세공을 바탕으로 화려한 주얼리 라인을 선보여 프랑스 사교계에서 인기를 얻었고, 이후 가업을 물려받은 까르띠에 가의 형제들이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해 브랜드 인지도를 넓혔다. 까르띠에는1964년까지 가족 경영 체제로 유지되다가 1993년 방돔 럭셔리 그룹(Vendome Luxury Group)에 합병되었고, 1997년 리치몬드 그룹(Compagnie Financiere Richemont S.A.)이 방돔 럭셔리 그룹을 인수하면서 리치몬드 그룹의 자회사가 됐다.

까르띠에 설립자인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1819년 프랑스 파리(Paris)에서 화약통 제조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1830년대 중반 파리 몽토르겨이가 29번지에 위치한 보석 세공자 아돌프 피카르의 아틀리에에서 견습생활을 시작했다. 29살이 되던 1847년에 아돌프 피카르가 죽자,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그의 스승이 운영하던 아틀리에를 인수했고, 자신의 성(姓)을 따 ‘메종 까르띠에’로 이름을 변경했다. 또한 자신의 이름 앞 글자인 L과 C로 둘러싸인 하트와 마름모꼴 문양을 자신의 홀 마크(Hall-mark)로 제작해 프랑스 상업등기소에 등록했다. 이것이 ‘까르띠에’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까르띠에는 보석·시계 브랜드 가운데 매출액으로 세계 1위다. 폭넓은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한 디자인에도 여러 가지 하위 모델을 내놓았다. 보석과 금속의 종류, 무브먼트 작동 방식, 시곗줄, 다이아몬드 개수 등에 따라 많게는 수십 가지 모델이 나왔다. 결정 장애를 일으킬 만큼 제품이 다양한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다량의 재고가 발생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비네론 CEO는 “제품이 다양한 것은 장점이지만 너무 많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릴 비네론(56) 까르띠에 CEO는 일본통이다. 1982년 스무 살 때 처음 도쿄에 가서 몇 년을 지냈고, 까르띠에와 LVMH 두 곳에 다니며 총 10년을 일본에서 근무했다. 이런 경험을 살려 『게이샤에서 망가까지:오늘날 일본 연대기』(2009)를 프랑스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예술적 감각도 좋다. 기타 실력이 수준급이며 작곡도 한다. 네 명의 자녀를 뒀는데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곡을 써서 선물했다. 이후 프랑스 그랑제콜(고등교육기관) ESCP 졸업 뒤 엔지니어링 업체 등에 근무하다 럭셔리 분야에 몸담은 지는 올해로 31년째다. 그는 “처음 럭셔리 분야에 왔을 땐 2년을 못 넘길 줄 알았다”며 “너무나도 비이성적인(irrational) 분야여서 놀라웠는데 나중엔 그게 좋아졌다”고 했다. 좌뇌(기술)와 우뇌(예술)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 분야라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도쿄국립박물관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 ‘마지씨앙(Magicien)’ 전시회는 좌뇌와 우뇌의 조화라는 비네론 CEO의 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술과 기술을 한데 담은 주얼리들이 눈에 띄었다. 다이아몬드가 전체 둘레에 기하학적으로 세팅된 ‘앵캉타씨옹’ 목걸이는 간단한 터치만으로 곡선 라인을 반전시킨다. 마치 마법을 부리듯 사이즈와 볼륨감이 변하면서 목선에 꼭 맞춘 목걸이가 된다. 흔치 않은 삼각형 다이아몬드를 플래티넘으로 엮어 빛을 배가시킨 ‘뤼미낭스’ 목걸이, 플로럴 모티프를 떼어 브로치로도 착용할 수 있는 ‘디사’ 팔찌도 진귀한 보석과 예술적 영감, 장인의 기술이 만나 탄생했다.


까르띠에는 설립 이래 주얼리, 시계, 액세서리 등의 부분에서 트리니티 링, 러브 팔찌, 탱크 시계, 산토스 시계 등의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을 제작해왔다. 특히 팬더, 난초, 앵무새, 용, 팬더, 중국 및 인도 문화 등 다양한 것에서 모티브를 얻어 독특한 스타일의 고급 주얼리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창조적이고 수공예적인 작업은 까르띠에의 장인정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까르띠에를 흉내 낸 가짜 상품들은 아무리 정교하고 완벽한 기술로 만들어도 완전히 똑같이 만들기는 힘들다고 한다. 까르띠에는 고급 주얼리 제작으로 시작한 브랜드답게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공방에서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 작품을 만든다. 수많은 스케치와 사전 회의, 수정을 반복해 제품에 대한 기본적 설계를 하며, 테스트용 제품을 제작한 뒤 연마 · 광택·세공 과정 등을 거치고 이후 장인의 손길로 다듬어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까르띠에의 브랜드 철학에 대해 그는 “컨템퍼러리 클래식을 지향한다. 오늘의 창작물이 내일의 보물이 되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까르띠에 제품은 40년 전에 만든 것이나 2년 전 것이나 똑같이 아름답고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다. 트리니티 링(3개의 고리가 겹쳐진 디자인의 반지)처럼 럭셔리하면서도 가격대가 높지 않은(affordable) 제품은 까르띠에의 상징과도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럭셔리란 무엇일까. 그는 “불필요하면서도 필요한 것. 사람은 누구나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되면 ‘그 이상’을 찾게 된다. ‘그 이상’은 ‘필요’에 비하면 ‘불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럭셔리다.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지만 누구나 추구한다. 누군가에게는 보석이고, 또 누군가에겐 예술·그림·집·자동차·악기일 수 있다. 처음에는 ‘불필요’한 것이었지만 익숙해지면 어느새 ‘필요’가 되고, 그러면 다시 또 ‘그 이상’을 찾는다. 결국 영원히, 끝이 없이 럭셔리를 추구한다. 이 과정에 아름다움이 탄생한다. 럭셔리는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다. 어떤 이유로 지구상에 다이아몬드가 하나도 안 남았다고 치자. 우리는 다른 종류의 돌을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럭셔리 소비 트렌드에 대해 그는 부자들의 안목이 좀 더 높아진 것 같다고 말한다. “오래가는 물건을 고르는 경향이 있다. 즉흥적인 구매도 사라지고 있다. 오래갈 물건에 투자해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럭셔리의 역설이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는 게 럭셔리인데. 결국 필요하지 않은 것 중에서 조금 더 필요한 것을 사는 것 같다.”

까르띠에가 한국에서 유독 성장한 이유
1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 명품 까르띠에가 한국에 상륙한 지 26년. 애초 에이전트 영업으로 출발했던 브랜드 까르띠에는 국내 명품 시장의 급성장과 한국에서 유독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에 대해 그는 “겸손하게 말하자면 2015년 메르스 공포로 지체된 매출이 회복하면서 2016년 실적이 확 뛰었다. 또 지역 전체를 보면서 그때그때 대응을 적절하게 잘했다. 고객은 환율에 따라, 정치·사회적 이슈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구매 패턴을 쉽게 바꾼다. 한국은 내국인과 외국인 구매력이 모두 강한 편이다. 
중국 수요 감소로 인한 매출 부진이 글로벌 실적에 악영향을 줬지만 여전히 중국은 중요하다. 심지어 한국시장에서도. 단순히 관광객으로서가 아니라 특정 도시에 투자한 중국인에게 주목하고 있다. 예컨대 많은 중국인이 서울에 아파트를 사고 있다. 도쿄에는 대학 진학을 위해 이주하는 중국인이 많다. 장기 체류하는 고객과 좋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이너스 실적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도 펼쳐나가고 있다. 그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다. “고급 시계 부문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겠다는 각오다. 까르띠에 DNA를 반영한 독창적 제품으로 라인업을 새롭게 구축할 계획이다. 그동안 너무 많은 제품을 여러 방향으로 내놓다 보니 초점이 흐려졌다. 앞으로 2년간 모델 수를 대폭 줄이고 불필요한 부분은 정리해 나갈 것이다.”                                 

이철영 대기자  lcyfe@sisanew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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